무라카미 하루키가 옴 진리교 사린사건 피해자들을 인터뷰한 책이 <UNDERGROUND>, 1년 후 옴 진리교 전/현 신자들을 인터뷰한 책이 <약속된 장소에서>다.
솔직히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 책을 재미있게 볼 줄은 몰랐다. 20년 전 친구의 권유로 손에 잡았지만 뭔가 감흥을 느끼는 데는 번번이 실패, 그나마 단편 쪽이 좀 더 재미있고 에세이는 느끼한 대로 견딜 수는 있다...는 정도였다. 그러나 <UNDERGROUND>와 <약속된 장소에서>는 재미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현실 사건과 현실의 인물에서 나오는 힘이 있고, 인터뷰어/작가의 절제된 태도가 편했다.
비교하자면 <약속된 장소에서>가 더 재미있다. 역시 극단적인 폭력은 피해자 뿐만 아니라 가해자(에 동참한 사람들) 편에도 정신적인 상처를 남긴다는 것을 다시 실감했다. 2차대전 패전 후 독일인들이 그러했듯이. 80년 광주에 투입되었던 군인들이 그러했듯이.
또, <약속된 장소에서>를 보면서 느낀 것은, 우리 사회에 정말 '영적인 면에 민감한 사람들'이 발붙일 곳이 없구나 하는 느낌. 솔직히 이미 세속화될 만큼 세속화된 제도 종교에서 성스럽고 영적인 부분을 찾는다는 것은 남들보다 영적으로 더 예민하고 내성적인 사람들에게는 힘든 일이겠다 싶었다. 전근대 사회에서는 샤머니즘이나 기인/은둔자에게 허용된 부분, 그 부분을 통해 그런 사람들은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현대 사회에서는 그런 부분이 없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신흥 종교를 찾아간다. 우리 사회는 성스러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생활'하게 해 주지 않는다.
그녀와 얘기를 나누다보면, 이 사람에게 옴진리교가 이상적인 '그릇'이었다는 것을 납득하게 된다. 분명 '현세'에서 살아가는 것보다는 교단에 들어가서 수행하는 편이 이 사람으로서는 훨씬 행복했을 것이다. 현세의 그 무엇에서도 전혀 가치를 발견할 수 없었고, 자기 안의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것 외에는 거의 흥미가 없었다. (중략)...너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굳이 '현세'에서 부대끼며 절박하게 살아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후략)
간다 미유키 인터뷰 중에서. <약속된 장소에서>(문학동네) 144-145쪽.
그런 느낌이 제일 집약된 것이 역시 간다 미유키 인터뷰였다. 이 사람 인터뷰는 이 책 전체에서 가장 독특하다. 다른 사람들의 인터뷰는 '옴 진리교 사린사건'이라는 것에 충격도 받고, 흔들리기도 하고, 괴로워하고 그러면서도 진지하게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일관성을 구축해 나가려는 현실적인 인간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런데 이 간다 미유키 씨의 인터뷰는 어딘가 반쯤 눈을 피안에 두고 있는 사람의 인터뷰 같다. 진지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성실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마음의 절반은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는 듯하다는 느낌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고 영적인 세계 같은 것에는 관심도 없고 취향도 맞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구조적으로 배제되는 사회, 그런 사람들이 전혀 삶에 대한 만족감을 느낄 수 없는 사회라면 이건 좀 문제가 있지 않나 싶었다. <플레즌트빌>의 색채 없는 세계만큼이나, 온갖 색채는 가득차 있는데 무채색과 침묵의 공간이 없는 세계도 끔찍하다. '옴 진리교 사린사건'은 '영적인 인간들을 배제하는 구조'에 대한 세계의 일그러진 반동이었을지도 모른다.